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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을 움직이는 건 실질금리입니다

읽는 시간 약 7분

금값이 오를 때마다 이유가 여러 개 붙습니다. 지정학적 불안, 인플레이션 헤지, 중앙은행 매수, 달러 약세 같은 것들입니다.

전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이 설명들은 오른 뒤에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후에 이유를 고르는 식이라 다음을 판단하는 데는 잘 쓰이지 않습니다.

여러 요인 중에서 그나마 일관되게 방향을 설명해 주는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실질금리입니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습니다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금은 들고 있어도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이자도 배당도 없습니다. 오히려 보관 비용이 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금을 살까요.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기대만이 유일한 수익 원천입니다.

여기서 비교 대상이 생깁니다. 같은 돈으로 국채를 사면 이자를 받습니다. 금을 산다는 건 그 이자를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회비용입니다.

그래서 금의 매력은 국채가 주는 이자가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반비례합니다. 국채 이자가 높으면 금을 들 이유가 줄고, 낮으면 금의 상대적 매력이 올라갑니다.

명목금리가 아니라 실질금리인 이유

그런데 국채 이자를 그냥 명목금리로 비교하면 어긋납니다. 물가가 같이 오르고 있으면 이자를 받아도 구매력이 줄기 때문입니다.

국채 금리가 5%인데 물가가 6% 오르고 있다면, 이자를 받아도 실제로는 손해입니다. 반대로 금리가 2%인데 물가가 0%라면 실질적으로 2%를 버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보정한 것이 실질금리입니다. 대략 명목금리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을 뺀 값입니다.

금의 경쟁 상대는 명목 이자가 아니라 이 실질금리입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건 돈을 안전자산에 넣어 둬도 구매력이 줄어든다는 뜻이고, 이런 국면에서 금이 강해집니다. 이자를 안 주는 자산의 약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질금리를 추정하는 가장 편한 방법은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를 보는 것입니다. 이 채권은 물가 상승분만큼 원금이 조정되기 때문에, 표시된 금리가 곧 실질금리에 가깝습니다.

FRED에서 10년물 TIPS 금리를 금 가격과 겹쳐 보면 대체로 반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TIPS 금리가 내려가는 구간에서 금이 오르고, 올라가는 구간에서 금이 눌립니다.

물론 항상 맞지는 않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은 실질금리가 올라가는데 금도 같이 오르는 구간이 나타났습니다. 이 관계가 깨진 것으로 보이는 시기입니다.

관계가 깨질 때는 다른 수요가 들어온 것입니다

설명이 안 되는 구간에서 대체로 등장하는 게 중앙은행 수요입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에서 금 비중을 늘리는 흐름이 이어지면, 이 매수는 금리 수준과 무관하게 들어옵니다. 수익률을 보고 사는 게 아니라 보유 자산의 통화 구성을 바꾸려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 위기도 비슷합니다. 실질금리와 상관없이 단기간에 수요가 몰립니다. 다만 이 수요는 사건이 지나가면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 구간의 상승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해 두고 있습니다. 실질금리는 바닥 흐름을 설명하고, 나머지 요인들은 그 위에 얹히는 변동입니다. 금값이 올랐다는 기사를 볼 때, 먼저 실질금리가 움직였는지를 확인하면 이번 상승이 구조적인 것인지 단기 수요인지 구분이 됩니다.

달러와의 관계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금과 달러가 반대로 간다는 설명도 많이 나옵니다. 금이 달러로 표시되니 달러가 약해지면 금값이 오르는 건 계산상 맞습니다.

다만 이건 원인이라기보다 같은 원인의 다른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질금리가 내려가면 달러도 약해지고 금도 오릅니다. 둘 다 같은 것에 반응한 것이지 서로를 밀어준 게 아닙니다.

달러만 보고 금을 판단하면 방향이 어긋나는 구간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금을 사는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같은 금에 투자해도 어떤 경로로 사느냐에 따라 실제 손익이 꽤 달라집니다.

실물 금은 살 때 부가가치세와 세공비가 붙습니다. 사는 순간 시세보다 비싸게 시작하는 구조라 단기 매매에는 맞지 않습니다.

KRX 금시장은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사고파는 방식입니다. 증권사 계좌에서 거래할 수 있고,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 방식이 다른 경로와 다릅니다.

금 ETF는 접근성이 가장 좋지만 상품마다 구조가 다릅니다. 실물을 보유하는 유형이 있고 선물로 추종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선물형은 만기마다 계약을 갈아타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해서, 장기로 들고 갈수록 금 현물 수익률과 벌어질 수 있습니다.

금 광산 기업 주식은 금값을 따라가되 폭이 더 큽니다. 생산 비용이 고정되어 있어서 금값이 오르면 이익이 더 크게 늘고, 내리면 더 크게 줄기 때문입니다. 대신 개별 기업의 경영 리스크가 함께 붙습니다.

원화로 살 때 환율이 겹칩니다

국제 금 가격은 달러로 표시됩니다. 한국에서 원화로 금에 투자하면 금값과 환율 두 가지가 동시에 손익에 들어옵니다.

금값이 올랐는데 원화가 강해지면 원화 기준 수익이 줄어듭니다. 반대로 금값이 제자리여도 원화가 약해지면 수익이 납니다.

이게 꼭 나쁜 건 아닙니다. 위기 국면에서는 대체로 금값이 오르면서 원화도 약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두 효과가 같은 방향으로 겹칩니다. 다만 내가 금에 투자하는 건지 달러에 투자하는 건지가 섞이기 때문에, 환헤지 상품인지 아닌지는 확인하고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환헤지와 언헤지의 구조적 차이는 따로 정리해 둔 글이 있습니다.

결국 보게 되는 건 하나입니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기 때문에, 이자를 주는 자산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따라 상대적 가치가 결정됩니다. 그 기준이 명목금리가 아니라 물가를 뺀 실질금리입니다.

실질금리가 내려가면 금의 약점이 사라지고, 올라가면 금을 들 이유가 줄어듭니다. TIPS 금리로 대략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관계가 깨져 보이는 구간에서는 중앙은행 매수나 지정학적 수요처럼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수요가 들어온 경우가 많습니다.

금리와 물가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는 CPI와 PCE는 뭐가 다를까? 연준이 실제로 보는 물가지표에서, 금리 수준 자체를 읽는 법은 장단기 금리차가 역전되면 왜 침체 신호라고 할까?에서 다뤘습니다.

참고자료

그로우
법인 잉여자금으로 미국 주식을 운용하면서 매크로 지표를 함께 보고 있습니다. 이커머스 사업을 운영하며 환율과 자금 사정을 현장에서 먼저 겪는 편입니다. 연준 대차대조표, TGA, 역레포, 지급준비금 같은 유동성 지표를 직접 추적하고 그 기록을 정리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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