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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닝 서프라이즈인데 주가가 빠지는 이유

읽는 시간 약 7분

실적 발표 기사를 보면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는 문장이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주가는 빠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이해가 안 됐습니다. 돈을 예상보다 많이 벌었는데 왜 주가가 빠지는지 설명이 안 됐습니다.

몇 번 지켜보고 나서 알게 된 건, 주가가 반응하는 대상이 지난 분기 실적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미 반영된 숫자입니다

상장기업의 실적은 애널리스트들이 미리 추정합니다. 여러 추정치의 평균을 컨센서스라고 부르고, 주가에는 이 컨센서스가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발표된 실적이 컨센서스와 같으면 주가는 거의 안 움직입니다. 예상대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어닝 서프라이즈는 컨센서스보다 얼마나 벗어났는가를 말합니다. 매출과 이익이 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예상 대비 차이가 재료입니다. 이익이 작년보다 30% 늘었어도 시장이 40% 증가를 기대하고 있었다면, 그건 실망스러운 실적입니다.

진짜 재료는 가이던스입니다

그런데 컨센서스를 웃돌았는데도 주가가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원인은 가이던스입니다.

가이던스는 회사가 직접 제시하는 다음 분기 또는 올해 전망입니다. 매출이 얼마쯤 될 것이고 이익률이 어느 정도일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주가는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값이라, 이미 지나간 분기보다 앞으로가 훨씬 중요합니다. 지난 분기를 잘했어도 회사가 다음 분기를 낮춰 잡으면, 시장은 낮아진 쪽에 맞춰 밸류에이션을 다시 계산합니다.

그래서 발표 자료를 볼 때 순서를 바꾸게 됐습니다. 실적 숫자를 먼저 보는 게 아니라 가이던스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를 먼저 봅니다. 그리고 회사가 가이던스를 아예 제시하지 않거나 범위를 넓게 잡았다면, 그것도 신호입니다. 회사 스스로 예측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대가 이미 높았던 경우

또 하나의 경우가 있습니다. 실적도 좋고 가이던스도 나쁘지 않은데 빠지는 상황입니다.

이건 발표 전에 이미 주가가 많이 올라 있던 경우입니다. 실적 기대감으로 몇 주 동안 상승한 상태라면, 컨센서스를 웃도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시장이 기대하던 건 공식 컨센서스가 아니라 그보다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속삭임 숫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공식 추정치와 별개로 시장에 형성된 암묵적 기대치입니다. 숫자로 공표되지 않아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대략적인 짐작은 됩니다. 발표 직전 몇 주간 주가가 크게 올라 있었다면 기대치가 공식 컨센서스보다 높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종목은 좋은 실적에도 차익 실현이 나오기 쉽습니다.

같은 실적에도 반응이 다른 이유

같은 수준의 서프라이즈인데 어떤 종목은 크게 오르고 어떤 종목은 덜 움직입니다.

차이를 만드는 건 대체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밸류에이션 수준입니다. 이미 높은 배수를 받고 있는 성장주는 실적이 그 배수를 정당화해야 합니다. 기대를 살짝 밑돌기만 해도 크게 조정됩니다. 반대로 낮은 배수의 종목은 기대 자체가 낮아서 작은 개선에도 크게 반응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익의 질입니다. 본업에서 늘어난 이익과 일회성 요인으로 늘어난 이익은 다르게 평가됩니다. 자산 매각 차익이나 환율 효과로 만들어진 이익은 다음 분기에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숫자가 좋아도 주가는 덜 반응합니다.

저는 발표 당일을 피합니다

실적 발표 직후는 가격이 가장 크게 움직이는 구간이면서,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가장 부족한 구간이기도 합니다.

숫자는 나왔지만 컨퍼런스콜은 아직이거나 진행 중입니다. 가이던스의 배경 설명, 비용 구조 변화, 수요에 대한 회사 시각은 대부분 콜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가격은 숫자가 나온 순간 이미 움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대에 매매하지 않습니다. 실적 시즌에는 발표가 끝난 뒤 자료와 콜 내용을 함께 보고, 필요하면 며칠 뒤에 판단합니다. 며칠 늦어서 놓치는 수익보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움직여 잃은 금액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실적 시즌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미국 실적 시즌은 대체로 분기가 끝나고 2~3주 뒤부터 시작해서 한 달 반 정도 이어집니다.

먼저 대형 은행들이 시작합니다. 은행 실적은 개별 기업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경기 전반의 선행 정보이기도 합니다. 대손충당금을 얼마나 쌓았는지를 보면 은행이 앞으로의 부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드러나고, 대출 증가율을 보면 기업과 가계의 자금 수요가 보입니다.

그다음 빅테크와 반도체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소매업체들이 나옵니다. 소매 실적은 소비자가 실제로 지갑을 얼마나 열었는지를 보여줘서, 지표로 나오는 소비 데이터와 맞춰 보면 유용합니다.

이 순서를 알고 있으면 시즌 초반 몇 개 실적으로 분위기를 가늠하고, 내가 보는 종목 차례가 오기 전에 준비할 수 있습니다.

콜에서 들을 것

컨퍼런스콜 전체를 듣는 건 시간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몇 군데만 골라 보게 됐습니다.

질의응답 부분이 가장 밀도가 높습니다. 앞부분의 준비된 발표는 대체로 보도자료와 겹칩니다. 애널리스트들이 무엇을 반복해서 묻는지를 보면 시장이 지금 무엇을 걱정하는지가 드러납니다.

경영진이 회피하는 질문도 정보입니다. 구체적인 숫자를 묻는데 방향성만 말하거나 화제를 돌린다면, 그 항목이 다음 분기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분기에 했던 말과 달라진 부분을 봅니다. 같은 항목에 대해 지난번에는 견조하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정상화되고 있다고 표현이 바뀌었다면, 그건 대체로 둔화를 완곡하게 말한 것입니다.

실적 발표 자료를 보는 순서

주가는 실적 숫자가 아니라 예상과의 차이에 반응합니다. 그리고 그 차이보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를 말하는 가이던스입니다.

좋은 실적에 주가가 빠졌다면 대체로 셋 중 하나입니다. 가이던스가 낮아졌거나, 발표 전에 기대가 이미 높았거나, 늘어난 이익이 반복되지 않을 성격이거나.

발표 자료를 볼 때 지난 분기 숫자보다 다음 분기 전망을 먼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해석이 많이 달라집니다.

지표 발표일에 시장이 움직이는 방식은 미국 고용지표 발표일에 시장이 흔들리는 이유에서, 밸류에이션 배수와 금리의 관계는 매그니피센트7이라고 다 같은 PER을 받지는 않습니다에서 다뤘습니다.

참고자료

그로우
법인 잉여자금으로 미국 주식을 운용하면서 매크로 지표를 함께 보고 있습니다. 이커머스 사업을 운영하며 환율과 자금 사정을 현장에서 먼저 겪는 편입니다. 연준 대차대조표, TGA, 역레포, 지급준비금 같은 유동성 지표를 직접 추적하고 그 기록을 정리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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