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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돈이 몇 번 손바뀜하는가, 통화 유통속도 이야기

읽는 시간 약 7분

이커머스 사업을 하다 보면 통계보다 먼저 체감되는 게 있습니다. 광고비를 같은 만큼 써도 전환이 덜 나오고, 거래처 결제가 조금씩 늦어지고, 재고를 넉넉히 잡는 게 부담스러워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시중에 돈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돈이 잘 돌지 않는 느낌입니다.

이 느낌에 해당하는 지표가 통화 유통속도(Velocity of Money)입니다. M2가 얼마나 늘었는지만 보면 놓치게 되는 부분을 채워주는 숫자입니다.

같은 돈이 몇 번 손바뀜했는가

통화 유통속도는 일정 기간 동안 화폐 한 단위가 경제 안에서 몇 번이나 거래에 쓰였는지를 나타냅니다. 계산은 명목 GDP를 통화량으로 나눈 값입니다.

여기서 유명한 항등식이 나옵니다. MV = PQ입니다. 통화량(M)에 유통속도(V)를 곱한 값이 물가(P)와 실질 생산(Q)을 곱한 값과 같다는 뜻입니다.

이 식이 알려주는 건 간단합니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M 증가) 그 돈이 돌지 않으면(V 감소) 좌변은 크게 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물가도 생산도 기대만큼 움직이지 않습니다.

2020년 이후 유통속도가 급락한 이유

2020년에 미국 M2는 짧은 기간에 크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통화 유통속도는 오히려 급락했습니다.

이유는 분모와 분자가 함께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원금과 대출로 통화량은 급증했지만, 봉쇄로 소비와 거래 자체가 줄어들면서 명목 GDP는 그만큼 늘지 못했습니다. 늘어난 돈의 상당 부분이 예금 계좌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돈을 이렇게 풀었는데 왜 물가가 안 오르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물가가 본격적으로 오른 건 경제가 다시 열리고 그 돈이 쓰이기 시작한 뒤였습니다. 이 시차를 데이터로 따로 확인해본 내용은 돈은 2020년에 풀렸는데 물가는 왜 2021년에 올랐을까에 정리해뒀습니다.

미국 M2 통화 유통속도 장기 추이 차트

유통속도가 낮으면 주식시장에는 어떤 일이 생기나

유통속도가 낮다는 건 돈이 실물 경제로 잘 흘러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게 주식시장에 두 갈래로 작용합니다.

기업 이익 쪽으로는 부정적입니다. 거래가 줄면 매출이 정체되고 이익도 눌립니다. 특히 내수와 소비에 의존하는 업종이 먼저 영향을 받습니다.

자산 가격 쪽으로는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실물로 안 가는 돈이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인데, 상당 부분은 예금이나 채권, 주식 같은 자산으로 갑니다. 실물 경기는 미지근한데 지수는 오르는 구간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그래서 유통속도가 낮은 국면은 “경제는 안 좋은데 주가는 괜찮은” 어색한 조합이 자주 나옵니다. 이걸 모순으로 보지 않고 구조로 이해하면 덜 당황하게 됩니다.

이 지표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제가 유통속도를 매매에 직접 쓰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 가지 한계가 뚜렷합니다.

분기 단위로만 나옵니다. 명목 GDP가 분기별로 발표되니 유통속도도 그렇습니다. 시장 대응에 쓰기에는 너무 느립니다.

후행 지표입니다. 이미 일어난 거래를 집계한 결과지, 앞으로를 예고하지 않습니다.

계산된 값입니다. 직접 측정한 숫자가 아니라 GDP를 통화량으로 나눈 결과라, 통화량 정의가 바뀌거나 GDP가 수정되면 같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지표를 배경 확인용으로만 씁니다. 분기에 한 번, 큰 흐름이 아래를 향하는지 바닥을 다지는지 정도만 봅니다.

그럼에도 챙겨보는 이유

M2만 보면 “돈이 늘었으니 자산 가격에 좋겠다”는 결론으로 쉽게 기울게 됩니다. 유통속도를 같이 보면 그 결론에 한 번 제동이 걸립니다. 늘어난 돈이 실제로 쓰이고 있는지를 되묻게 되기 때문입니다.

2020년부터 2022년 사이에 이 두 숫자가 정반대로 움직인 걸 보고 나서, 통화량 하나로 판단하는 습관을 버렸습니다. 통화량과 유통속도, 그리고 금리까지 세 개를 같이 놓고 봐야 지금 국면이 어떤지 대략 잡힙니다.

M2와 지수의 관계를 데이터로 확인해본 내용은 M2는 절대 규모가 아니라 증가율의 방향으로 봅니다에, 유동성 지표 전반을 합쳐 보는 방법은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란? Fed·TGA·RRP로 시장 자금 흐름 읽는 방법에 정리해뒀습니다.

사업 현장에서 먼저 보이는 신호

통계는 분기마다 나오지만, 현장에서는 그보다 먼저 감지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커머스를 운영하면서 중국에 원자재 대금을 결제합니다. 그래서 환율과 자금 사정을 지표보다 몸으로 먼저 겪는 편입니다. 유통속도가 떨어지는 국면에 반복해서 관찰한 것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객단가가 먼저 내려갑니다. 방문자 수나 주문 건수보다 한 번에 사는 금액이 먼저 줄어듭니다. 살 사람은 사는데 덜 사는 겁니다.

결제 주기가 길어집니다. 거래처들이 대금 지급을 조금씩 미루기 시작합니다. 각자 현금을 조금이라도 더 쥐고 있으려는 행동이 모이면 그게 곧 유통속도 하락입니다.

재고를 줄입니다. 팔릴지 확신이 없으니 발주를 보수적으로 잡게 됩니다. 이 판단이 업계 전반에 퍼지면 실제 거래량이 줄어듭니다.

시중에 돈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소비자 지갑이 닫히고 기업도 현금을 쥐고만 있으니 순환 속도가 떨어지는 겁니다. 통계로는 한 줄이지만 현장에서는 이렇게 여러 갈래로 나타납니다.

이런 것들이 몇 달 뒤 통계로 확인되는 걸 몇 번 보고 나서, 지표를 볼 때 현장 감각과 맞춰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반대로 통계만 보고 현장과 다른 결론을 내리면 대체로 제가 틀렸습니다.

유통속도는 다시 올라갈 수 있나

2020년 저점 이후 미국 통화 유통속도는 완만하게 회복하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경제가 다시 열리고 예금에 묶여 있던 돈이 쓰이기 시작한 결과입니다.

다만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통화 유통속도는 장기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를 보여왔습니다. 금융자산의 비중이 커지고, 결제 수단이 발달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소득 대비 소비 성향이 낮아지는 구조적 요인들이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직전 몇 분기 대비 방향이 어느 쪽인지만 봅니다. 장기 추세가 하락이면 그 안에서의 반등도 의미가 있고,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통속도를 아직 보고 있는 이유

통화 유통속도는 돈의 양이 아니라 돈의 회전 속도를 보는 지표입니다. 느리고 후행하지만, M2 하나만 보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걸 막아줍니다.

돈이 늘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저는 한 가지를 더 확인합니다. 그 돈이 실제로 돌고 있는가입니다. 이 질문 하나로 판단이 달라지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참고자료

※ 본 글은 금융시장과 경제지표에 대한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금융상품의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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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잉여자금으로 미국 주식을 운용하면서 매크로 지표를 함께 보고 있습니다. 이커머스 사업을 운영하며 환율과 자금 사정을 현장에서 먼저 겪는 편입니다. 연준 대차대조표, TGA, 역레포, 지급준비금 같은 유동성 지표를 직접 추적하고 그 기록을 정리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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